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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공동체   2016-03-21 824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르 12, 38-44)

 

하느님의 음성과 사탄의 간계한 유혹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산다면 어떻게 살까요?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현실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악의 유혹에 쉽게 빠져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며 큰 죄악을 저지를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12, 38-44)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 뿐이시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고백은 하느님께서 직접 알려 주신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여,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이 누구시라고 생각하며 살거나 마귀들의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못 알고 사는 것을 성 마르코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까요? 베드로를 보면 살과 피를 가진 인간도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같은 인간인데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까요? 이것을 알아야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족함이 많아서 예수님께 꾸지람을 자주 들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라 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바쳐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신앙고백을 마음 속에 품고 산 사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빵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며 빵을 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물어보면 빵을 배불리 먹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음성, 계시를 들은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구에 의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으니 '저에게서 떠나가 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루카 5,8). 죄를 고백해야 하는 고해성사 중에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잘난 사람임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뿌리 깊은 죄는 감추거나 변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여 드러내놓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회개하여 새롭게 살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입니다.

단지 자기가 아픈 곳을 치유 받기 위해서나 배불리 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결국 율법학자나 수석 사제들처럼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적이라고 생각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악을 쓰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부분 그런 깊은 의식 없이 고백합니다. 하지만 나의 온 존재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나의 내면 전체는 그리스도로 바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예수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바탕으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 고백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교회를 세워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인간 베드로 위에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하느님의 말씀 위에 세우셨기 때문에 그 교회는 다른 어떠한 세력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시고 죄를 용서해주시는 권한을 주신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기초를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저함도 없이 이 모든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베드로가 살과 피의 베드로로 돌아간다면 이 권한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 권한은 살과 피로 행사하거나 유지될 수 있는 권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살과 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내가 정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흥정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일까요? 예수님을 만난다면 무엇을 청할까요? 빵을 청하거나 아픈 것을 낫게 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일까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많은 성인 성녀들은 저는 죄인이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하며 십자가를 더 청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사람들은 좀 더 무거운 십자가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가 진실로 청해야 할 것은 십자가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여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 없어지기를 청하기 보다는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그것을 특권으로 생각하여 기뻐하며 그 동안 내 잘못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예수님과 이웃을 아프게 한 것을 통회하고 보속하며 예수님 안에 머물며 예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청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인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이고, 문헌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충격, 부활
복음선포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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