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공동체   2017-01-17 639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감추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사실 우리의 한계만큼 보잘 것 없습니다. 소중한 것들은 맨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못 보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과학이 발달해서 잘 살펴본다고 해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모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와 남편이 너무나 가까워서 그들로부터 외톨이로 쫓겨난 듯한 느낌으로 사는 아내가 있습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먹고,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시하고, 목이 말라도 자기들끼리만 물을 마시지 자신에게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느님의 도움으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그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그들에게는 맛있는 것도, 물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빈 그릇만 서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목이 너무 말라서 물 한 모금만 주기를 바랐는데 그들도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아내는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안 보이는 것인 줄 모르고 자기 판단이 맞다고 확신을 갖고 살았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를 도와주려고 하고 사랑을 해주려고 했지만 안 되는 상황이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의미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쳐다본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참된 경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강생 안에 담겨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은수자의 삶을 살면서 변화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함께 머물러 계시는 예수님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우리 눈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인간과 같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구유에 누어 계셨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것을 깨달으려면 아직 한참 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살며,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내맡기면서 사는 사람이라야 아주 조금 보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 안에 파악되어서 보이는 것이고, 진짜 하느님은 파악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빛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이 아닙니다. 이 빛이 보입니까? 안 보인다고 빛이 없는 것입니까? 안 보여서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안 보이지만 빛이 있다고 믿고 사는 두 사람은 아주 큰 차이가 생깁니다. 안 보인다고 빛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영원히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오셨으니 빛을 보리라는 희망과 믿음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빛을 보게 되고, 때가 되면 참 빛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 정도의 수준으로 살게 됩니다. 사람 안에는 아주 어처구니 없이 잘못 형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안에서 자기 죄와 잘못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죄악은 죄악도 아닙니다. 아주 악랄하고 더럽게 산 모습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압니다. 그래서 그런 잘못들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짓는 죄악은 그들 생각에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리 큰 죄가 아닙니다. 그들이 파악할 수 있는 죄들은 나이가 들어서 보면 오히려 순수해 보입니다.

 

우리의 끔찍한 죄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죄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또한 우리의 큰 죄악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셨는데, 부모님이 훌륭하고 죄를 짓지 않아서일까요? 하느님께서는 나의 부모에게 악함이 있는 것을 모르실까요? 부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기까지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부모님이 진심으로 존경스럽고, 훌륭하신 분으로 보이기 전까지는 자기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효도한다고 하면서 안부 전화하고 좋은 선물을 드리는 것이 사랑하는 것일까요? 마음속 깊은 데에서부터 정말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기 전까지는 하느님도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내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 내 인간성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간성 전체가 죄악, 미움, 분노로 잘못 형성된 것으로 바닥을 깔고 있다면 그 위에 아무리 고귀한 것을 얹어도 냄새 나고 더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인간 안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흠숭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런 나 자신임을 깨달아서 그 상태에서 하느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점점 더 알게 되고 아는 만큼 흠숭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안 계시는 것 같고,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도 계시다고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믿는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가끔 나 자신이 인간적으로 너무나 잘못 형성되어서 희망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인간적으로 형편없다는 것은 인간들끼리 사는 데는 문제가 될지 몰라도 하느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빛을 받고 빛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이것을 믿는 사람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것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예수님의 참 빛으로 나는 빛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 빛이 내 안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기로 오셨지만 때가 되어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 어둠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빛이 어둠 속을 비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참 빛의 기쁨, 영원한 삶의 기쁨, 빛을 받아들이는 기쁨을 보고 살게 되는 길이 열린 날이 성탄절 대축일입니다.

 

바쁘다고
슬픔을 달래시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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