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바쁘다고
공동체   2017-02-10 586

 

바쁘다고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마르코 1, 29-39)

 

 

이 세상살이는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끊임없이 우리를 분주하게 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사시면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끊임없이 분주하게 사셨습니다.

 

    마르코 복음 (1,29-39)에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나자마자, 병든 사람들, 마귀 들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와서 그들을 다 고쳐주시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에게도 예수님께서 열이 가시는 기적을 행하시는데,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치유해 주셔야 하고,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모두 다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남겨두고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시몬 베드로도, 안드레아도,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찾아 다니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살면서 이것이 중요하다, 저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살지만 예수님께서는 바쁠 것이 없으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강하게 요구해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예수님을 찾은 다음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의 말을 무시하시고 "다른 고을로 가자"고 하십니다. 그 고을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는 데에도 다른 고을로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사셨기에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사실 수 있으셨을까요?

    명확한 것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모두 다 들어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 원하는 것을 다 하려고 하면 당연히 지쳐서 짜증내지 않으려 노력해도 짜증을 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허덕이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사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아무리 사람들이 들이닥쳐도 한적한 곳에 가시어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물러 그분의 뜻을 잘 알아 듣고 그분과 하나 되는 사랑을 나누며 천상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복음을 보면 자주 예수님께서 홀로 외딴 곳으로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쁘게 사시지만 바쁜 것에 온 생각, 온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느님 아버지께 마음을 두고 계십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바쁜 일에서 벗어나 홀연히 외딴 곳으로 가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충분히 머물러 계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과 명확히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들은 바쁘면 하느님을 놓칩니다. 그래서 집중이 안 돼서 기도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때로는 열심히 산다고 착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뿌리, 삶의 중심이 하느님께 있지 않고 바쁘다고, 필요하다고 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쁘지 않은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매일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들은 잘 몰라서 제자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으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셔서 모든 질병을 낫게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병든 사람이 다 나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귀 들린 모든 사람들이 치유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들은 병에 걸리면 병이 낫는 것이 목표이고, 마귀가 들리면 마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닙니다. 병에 걸려도 괜찮습니다. 마귀가 들려있어도 괜찮습니다. 왜 괜찮은 것일까요?

 

    병에 걸려도 마음만 있으면 예수님처럼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천상의 기쁨에 젖어 사는데 별 지장이 없습니다. 아픈 사람이 병이 나으면 외딴 곳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서 뜨거운 사랑의 대화를 나눌까요? 병이 그것을 좌지우지 할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이라도 마음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병이 낫고 안 낫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물러 그 분과 하나가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천상의 기쁨을 누리며 사느냐 안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내가 무엇을 이해하고 결정하는데 내 마음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리는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혹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병에 걸렸으니까 낫기를 원하고, 마귀가 들렸으니까 마귀가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병이 나은 후 회개하지 않고 옛 삶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시면서도 계속 치유해 주셔야 했을까요?

    제가 성 마리아 은둔소에 살면서, 곧 죽을 것 같아 도와달라고 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저희 벗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도하였더니 그 어려운 처지에서 나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난 순간 예수님이고 뭐고 없이 옛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병이 나으면 뭐하나? 병이 나으면 더 나쁜 짓을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사업이 망했다가 다시 사업이 번성하면 뭐하나? 사업이 번성하면 더 나쁜 짓을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병이 낫고 들린 마귀가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병든 사람이든, 마귀 들린 사람이든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물러 그분과 하나가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천상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한 핵심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사시면서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 봅시다.

나는 예수님처럼 아무리 바빠도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바쁜 일을 내려 놓고 홀연히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기쁨에 넘쳐서 어쩔 줄 모르며 살고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는 사람인지? 일에 휩쓸려서 기도할 때에도 일에 마음을 쓰고, 일할 때에도 예수님 없이 살며 짜증을 부리고 분노하며 지쳐서 슬프게 사는 사람인지?

    이것을 식별해 보고 너무 바쁘고 지쳐서 기도를 못한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 나야 할 것입니다. 이 그릇된 생각이 바로 잡혀야 마음의 뿌리에서부터 회개하여 일에 고착되어 있는 불쌍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며 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 예수님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기쁨에 젖어 사는 것을 놓친다면 은수생활의 의미도 없고, 복음말씀도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외딴 곳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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