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나의 외딴 곳은
공동체   2017-03-05 549

 

 

 

나의 외딴 곳은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마르 6,30-34)

 

 

마르코 복음 6, 30-34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외딴 곳에 가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도 외딴 곳에 가셔서 쉬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핵심적인 일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았으면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하거나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착각이고 내면에는 거짓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이 지치셨을 때 - 보통 사람이라면 피곤해서 자야겠다고 하는데 -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피곤하여 쉰다고 하면 기도도 쉬고 잠을 자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피곤하실 때 외딴 곳에서 기도하십니다. 만일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셔서 더 힘이 빠지고 그 다음 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신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드실 겨를 조차 없으신 예수님께서 밤을 새고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피곤하면 보통 잠을 많이 자려고 하는데 어느 경우는 잠을 많이 자서 풀리지만 어느 경우는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피로는 잠을 자면 풀리지만 정신적인 피곤과 영적인 피곤은 잠으로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곤을 잠으로 풀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신적, 영적인 피곤은 밤을 새우면서라도 예수님 안에 머물러서 예수님의 사랑을 깊게 체험하며 얻는 기쁨으로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치셨는데도 밤 새워 기도하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밤을 새워 하느님 아버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시고, 사랑 자체이신 삼위일체인 하느님과 깊은 사랑의 대화를 나누시고 서로 하나가 되셔서 천상의 기쁨에 머무시는 것으로 피곤을 풀고 힘을 얻으셨습니다.

 

잠으로 피곤이 풀리지 않는 피곤은 사실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악행을 저지르면서 회개하지 않고 계속 악행을 고집하는 사람과 옆에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쉽게 피곤해집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그 자체로 피곤이 풀리고, 예수님 안에 머물면 예수님의 자비하심으로 모든 욕구가 진정되어 제자리를 잡아 쉬게 됩니다.

 

밤도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그 사람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도 가까이 두지 않으시고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시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한적한 곳에 가서 하느님을 찾으면서 하느님 안에 머물며 기도하려 했을까요?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닙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마귀들을 쫓아 보내시는 것을 매일, 하루 종일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다 보았다고 해서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주 나중이 되어서입니다.

 

피곤하신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것이 우리 삶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바빠서 음식을 먹을 겨를이 없을 때라도 외딴 곳, 나만의 공간에서 하느님 안에 충분히 깊게 머물러서 기도해야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기도, 넋두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속이 시원해졌다고 모두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것이고 그렇게 기도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 정말로 기쁩니다. 이 기쁨은 술을 마시며 나누는 우정이나 축하하면서 나누는 기쁨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은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체험은 예수님 안에 머물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늘 짜증을 부립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예수님처럼 살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 조차도 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의 숨을 헐떡거리게 할 것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 늘 숨을 헐떡이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되어야만 하는 일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전부 다 한다고 예수님께서 좋아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느님 안에 머물러서 하느님 안에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복음을 전해야지’, ‘사랑을 해야지라고 하지 않아도 천상의 기쁨이 전해지며 복음도 전해집니다.

 

예수님을 깊게 사랑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라 하니까 하는 기도를 오래도록 하면 힘에 겨운 삶을 살게 됩니다.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려면 정해진 공동 기도시간 외에 자기의 고유의 기도시간을 내어서 기도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시간 기도하시려고 외딴 곳에 가신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것 저것 할 것을 갖고 기도하러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 안에만 머무르시려고 가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의 사랑에 젖어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고백을 하며 기쁨에 차 있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본래 삶이고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시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계시는지, 어떠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시는지 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 기쁨에 넘쳐 찾아 오는 사람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무뚝뚝한 얼굴이나 무표정한 얼굴, 무서운 얼굴로는 복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예수님 사랑으로 기쁜 삶을 살 때 그 기쁨으로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가진 자와 비운 자의 생명
바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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