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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공동체   2017-06-13 526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1)

 

요한 복음 8, 1-11 말씀 중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듣고 응답하기보다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줄곧 다그치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그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시면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막달라 마리아가 정말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대 초반이었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여러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보니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이후로 죄를 짓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기쁘고 감사하기도 했겠지만 부담도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창녀가 직업이었기 때문에 성중독성이 있었을 것이고 그 밖에도 마귀가 들릴 정도로 악한 습관도 있었고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당장 창녀 생활을 포기하고 또,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노력하며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이끄는 지도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 그렇게 하면 될 줄 알고 스스로 질책하고 벌을 주며 노력하지만 이렇게 하면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죄를 짓고 죽음의 너울을 두껍게 쓰고 옛 삶으로 돌아갑니다. 죄짓지 않는 방법을 어리석게 가르쳐 주면 죄의식만 깊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자신을 보며 자신감을 잃고 희망까지 잃어서 생명력도 상실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막달라 마리아가 될 수 있었을까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에게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요한13, 6. 9)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고 있다면 죄를 짓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려면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가능합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주 깊이 체험해야 생명을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면 아브라함처럼 이사악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친 이유는 하느님도, 이사악도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성 안토니오처럼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까워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간음하다 잡혀온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을 까요?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그녀가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 만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자로서 아주 부끄럽고 참담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그녀는 하느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겁에 질린 긴박한 상황에서 스쳐가듯 짧은 만남이 있었는데 ...

게다가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막달라 마리아로 인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빌미를 잡혀 고소당할 수 있는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막달라 마리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사랑하셨을까요?

 

먼저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를 단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예수님도 단죄하지 않으신다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을 들고 둘러서서 으르렁대는 긴박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무엇인가 열심히 쓰셨습니다. 무엇을 쓰셨을까요?

사실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 이 글, 이 복음말씀이 막달라 마리아를 완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숨막히고 긴박한 순간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전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이 짧은 순간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셨기에 그녀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수치스럽고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녀 앞에 쓰신 말씀을 읽고, 그 분을 믿어 하느님을 사랑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리고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숨겨진 죄를 쓰셨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묵상해 보니 저는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회개하라고 하면 죄인 취급한다고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회개하려고 피정을 온 사람들 중에도 자신의 수치심, 죄가 들어나지 않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말하지 않으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면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 사람들의 숨겨진 죄를 드러내셨다면 그들은 속으로 앙심을 품고 더 거칠게 대들었을 것입니다. 마귀들도 똑같습니다. 제가 마귀들을 괴롭히려고 기도하면 마귀들도 저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대듭니다. 하지만 마귀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사랑의 기도를 하면, 뜨겁다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사랑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전해져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보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만남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가브리엘 대천사의 만남처럼 숨을 죽이며 조용히 오가는 눈빛을 느꼈습니다. 이 짧은 첫 만남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죄의 용서와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당신과 하나되는 은총을 베푸시며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더 이상 창녀로서는 살 수 없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고문과 같은 것입니다. 이 만남이 흐트러졌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의 삶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만남이 이토록 중요했기에 예수님은 이 만남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생명을 바쳐 사랑하시어 막달라 마리아는 죄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 예수님 안에 사랑으로 머물며 복음 말씀을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막달라는 하느님의 사랑을 정말로 믿고 체험했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하느님을 믿고 그분 안에 머물러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마귀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쫓겨 나간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창녀 생활에서 좀 벗어난 사랑 체험으로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아직 기복적인 체험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기에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만 머물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던 것입니다.(요한 12, 3)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 은둔소에는 우리 벗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수호성인들이 있습니다. 벗들이 기도를 하다 보면 기도 중에 성인들의 도움을 느끼고 그분들이 느껴져서 서로 묵상을 나누다 보니 너도 나도 그런 체험을 했다고 해서 우리 공동체에 여러 분의 수호 성인과 수호천사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수호성인 중에 한 분이 막달라 마리아 성녀이십니다. 막달라 마리아 성녀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따랐기에 죄인들이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도움을 주십니다.

 

벗님 여러분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아주 불편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깊은 사랑을 하셨습니다. 저희도 아무리 긴박해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상황에서 사랑하면 뜨겁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에 하겠다고 피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살면 그 사랑은 전해집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려면 하느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간절하게 마음을 모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가할 때나 바쁠 때나 하느님을 찾을 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을 사랑을 충만히 받아 기쁨에 넘치는 신앙 생활을 할 때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이 불타오르고 있으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생명을 바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건너가야 할 삶
가진 자와 비운 자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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