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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건너가야 할 삶
공동체   2017-06-19 466

어차피 건너가야 할 삶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0-69)

 

성경은 인간을 영(sprit)과 육(flesh)으로 구성된 합일체로 보기도 하고, (spirit), (soul), (flesh)으로 구성된 합일체로 보기도 하며, 영혼(anima)과 육신(body)으로 구성된 합일체로 보기도 합니다 (1데살 5, 13; 히브 4, 12). (sprit)이 있는 육(flesh)은 생명이 있는 육신(, body)이고 영(sprit)이 없는 육(flesh)은 죽은 살덩이 입니다. 또한 성인들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영혼과 육신의 능력과 구성, 상호작용을 더욱 세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영(sprit)과 육(flesh)으로 구성된 합일체로 보시며 제자들에게 (sprit)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flesh)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6, 60-69).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영적으로 살아 생명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인지, 육적으로 살아 아무 쓸모 없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나는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육적인 욕구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이성도 육적인 욕구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성적인 활동도 육적인 욕구를 추구하게 되고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됩니다. 이성적으로 많은 활동을 해서 이성적인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뛰어난 활동을 했다 해도 다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율법을 철저히 실천하는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은 감히 이 사람들 축에 낄 수도 없을 만큼 열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라도 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의 지배를 받아서 육적인 욕구대로 이성적 활동을 하게 되면,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육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해서 단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떻게든지 단식을 하기에, 아무리 놀라울 정도로 단식을 잘 지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전혀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정말 고달프게 단식합니다. 이렇게 육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위하여 박사학위를 받으면 뭐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박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나는 어떻게 해서든 박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받아봐야 내용도 별로 없고, 세상에 도움도 주지 못하는 박사 학위를 겨우 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러나 영적인 욕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 이성도, 육체도 모두 영적으로 상호 작용해서 모두 영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하다못해 잘 몰라서 실수를 했어도 오히려 도움이 되어 더욱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갑니다. 예를 들면 어느 성인은 육적인 욕구대로 살지 않기 위하여 자는 동안에도 서 있으려고 나무에 자기 몸을 묶어 놓고 잤습니다. 이 성인이 이렇게 나무에 자기 자신을 묶고 1-2년 잠을 자다 보니 무릎을 비롯해서 몸의 여러 군데에 무리가 가서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누워서 잠을 자게 되었지만, 이미 육적인 욕구에서 벗어나서 영적으로 불타서 하느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며 성덕에 도달하였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육적인 욕구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영성 생활의 핵심입니다. 육적인 욕구를 추구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육적인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이 영성 서적을 아주 많이 읽어서 그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어도 그의 삶은 육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영성 신학 공부를 많이 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저절로 영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 ‘그렇게 하겠다하는 것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내가 마음을 먹었으니까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실천을 해야 합니다. 본성적인 삶으로 이제까지 습관이 된 것들, 본성적으로 이성적인 활동을 하는 것들, 육적인 삶 전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 옵니다.

 

이 모습을 모든 성인 성녀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성서적을 잃고 성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땅바닥에서 기면서 살았습니다. 세수도 안 하고, 손톱 발톱도 안 깎고 땅바닥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이고, 적군도 살려줄 정도로 지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기 위해 2년 동안 죽을 각오로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도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 2년 정도 들어가 살았습니다. 성인 성녀들 치고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옮겨 가는데 일상생활을 하며 저절로 된 사람은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면 육적으로 살면서 길들여진 모든 것이 영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저절로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육적인 사람으로 살았다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하고 있는 것들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육적인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이 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영원한 생명을 주고, 천상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영적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줍니다. 영적인 사람이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악해지느니 차라리 순교하겠다 할 것입니다. 반대로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쓸모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살고 죽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육적인 욕구들을 단호하게 영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삶에서 현실적으로 생활화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에 나오는 믿지 않는 자들, 예수님을 팔아 넘길 자들처럼 배반할 것입니다. 육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귀들이 어떤 사람을 괴롭히다가도 고통스러우면 그 사람에게서 나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우니까 입으로만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TV를 자꾸 보다 보면 처음에는 아니더라도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음란한 것을 찾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두 번 반복한 경험으로 제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면 TV를 없애든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은 마귀들이 나가겠다고 하면서 속에서는 악을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 먼저 TV를 저의 숙소에서 제거했습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을 영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반드시 조치를 해서 모든 것을 영적인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나의 자유의지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영적인 삶으로 이끌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합니다. 저는 본당에 있을 때 매일 묵주기도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매일 레지오 마리애에서 묵주기도를 할 때 저를 불러달라고 부탁해서 같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묵주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체조배실의 감실을 제가 직접 열고 닫겠다고 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체조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 놓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았다면 기초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저는 쉽게 악에 기울어져서 무너졌을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못하면 육적인 사람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인은 자기를 나무에 묶었고, 어떤 성인은 어디로 가지 못하게 동굴 속에서 산 것입니다. 성인 성녀들은 자기를 버리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합니다. 저절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거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얼마나 깊게 육적으로 살아 왔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육적으로 깊게 살아 온 사람은 정말 더 이상 못하겠다는 말을 계속 할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살아서도 죽어서도 반드시 육에서 영으로 건너가야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인 세상으로 건너 가면 많은 공로도 쌓고 성덕에도 도달합니다. 하지만 죽어서 건너가면 아무런 공로도 없고 더욱 힘듭니다. 어차피 반드시 한 번 건너가야 할 삶이라면 지금 결단을 내려서 사는 것이 현명한 삶입니다.

[강의] 성덕에 이르는 길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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