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왜 쉬나요?
공동체   2017-08-31 577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마태오 복음에(11,28-30)쉬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무겁고 고생스런 짐을 진 사람들에게 당신께 와서 쉬라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쉬라고 하셨을까요? 복음의 다른 부분에도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따로 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생스럽게 사는 사람들,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쉬어야 할까요? 그 방법은 '나에게 와서 쉬어라.' 입니다. 실제로 쉬는 것은 예수님께 가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사실 예수님을 떠나서 쉰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고 쉼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못 생각하여 잘못된 방법으로 쉬니까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 안에서 쉬지 않은 사람은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쉬는 방법을 찾아 쉬겠지만 예수님께 가서 쉬지 않으면 예수님의 안식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생하고 무거운 짐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벗님들은 왜 쉬나요? 세상 사람들은 왜 쉬나요? 운동 선수들은 큰 대회를 하고 나서는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회복 훈련을 하는 등, 체계적으로 쉽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쉬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심하게 해서 지쳤어도 다시 회복 운동을 해가며 근육을 풀어 주면서 쉽니다. 운동 선수가 쉬는 이유는 운동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 쉬는 사람은 운동선수입니다. 수험생도 그렇습니다. 수험생이 쉬는 것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쉽니다. 또 어렵고 힘든 노동자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있어도 그와 함께 식사도, 좋아하는 술도 안 마시는 것을 보았는데, 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하려면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동하기 위해서 쉬는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성 아폴리나리스 순교자의 순교록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잔혹하게 고문 당하며 순교하는 과정을 읽어보면 너무나 끔찍합니다. 아무리 심하게 고문을 당했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상처가 아물고 괜찮아져서 또 고문을 당합니다. 그렇게 죽이려고 악랄하게 고문을 해도 죽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유배를 보냅니다. 성 아폴리나리스 순교자는 순교하기 위해서 쉬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생을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셨을까요?

사도들이 쉰 이유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을 새고 기도를 하시면서 쉬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나누시며 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쉬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왜 쉬고 있나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쉬고 예수님 안에서 쉬려는 벗은 잘 생각해서 올바르게 쉬는 벗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쉬었다면 잘 쉰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무엇 때문에 쉬었는지 자신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운동하며 모든 힘을 다 쏟는 것처럼 우리 벗들은 우리의 모든 힘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써야 합니다. 다른 것에 힘을 써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힘이 없다면 생활방식을 바꾸어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상태에서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삶을 조절해야 합니다. 어쩌다 어쩔 수 없어서 지친 상태에서 졸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졸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하기가 곤란합니다.

프로 축구선수가 축구를 하러 축구장에 와서 힘없이 졸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온 힘을 다해서 뛰어야 하는데 운동장 한쪽에 가서 쉬고 있다면 프로 축구선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기도하는 벗님들의 운동장은 성당인데 성당에 와서 힘없이 졸고 힘을 아끼며 기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할 일이 많다고 일을 많이 해서 힘없이 성당에 와서 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을 조절해서 해야 합니다. 축구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운동장에 오는 것처럼 벗님들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성당에 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데에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집중력과 힘을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쏟아야 합니다.

몸을 위해서 기도 시간에 쉬는 사람은 환자입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도 시간에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영혼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불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다른 무엇을 위해서 기도를 할 때 목소리를 아끼고 힘을 아끼며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피곤하다면 기도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할 때 쉬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온 힘과 영혼을 다하여 기도에 집중을 해야 할 수 있도록 온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 아폴리나리스 순교자는 고문당하다가 죽지 않자 추방당했는데 추방 당한 곳에서 또 온 몸이 문드러지도록 고문을 받고도 그 상황에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기도하러 와서 쉬는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축구장 한쪽에 가서 뛰지 않고 거닐고 있다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러 와서 힘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졸고 있다면 정말 큰일 날입니다. 왜 쉬는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예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쉽니다. 오늘 하루를 사시면서왜 쉬는가?’를 성찰해 봅시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 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인지, 운동선수인지, 노동자인지, 수험생인지 ...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바져나가는 삶
[강의] 성덕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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