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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바져나가는 삶
공동체   2017-10-19 423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삶

- 현대 소비주의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가평에 있는 성 마리아 은둔소에는 학교에서 정학을 맞은 아이들이 가끔 찾아오곤합니다. 그 중에 베드로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학교에서 제일 싸움을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떤 아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니?” 하고 물어보니 다른 학교에서 싸움 잘하는 형들이 자기를 협박하며 그 아이를 괴롭혀라.”고 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그 형들이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주먹만 잘 쓰면 자기를 괴롭힐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돈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편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습니다. 베드로는 은둔소에 머물러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사제로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구가 커서 아직 사제 성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고 물었더니 정당하지가 않은 방법으로 벌려고 해서 그렇게 돈을 벌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 알려 주었지만 돈에 대한 욕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도 재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부자 청년과 마태오입니다. 마태오는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돈을 목표로 사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돈에 중독된 사람,마태오가 성덕에 도달하는 과정이 전해지지 않지만 영성 신학적으로 접근하여 정화의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가 .”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현실적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과 외적인 삶은 버렸어도 내면까지 정화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냐시오로욜라 성인도 자기의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고 여러 번 극심하게 좌절하였습니다.그럴 때마다 회개해서 하느님께 의탁하여 성덕에 도달한 것처럼 마태오도 한 번에 성덕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힘든 현실을 살면서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을 매일 죽도록 체험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많이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오히려 쉽다고 할 수 있을만한 어려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9,24). 그런데 세리 마태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힘든 체험을 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마태오도 처음에는 부자청년처럼 당연히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오는 재물을 포기했습니다. 마태오가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마태 19,22). 예수님께서 사랑스럽게 바라보신 부자 청년은 많은 재물로 풍요로운 생명을 유지하며 살면서도 만족할 수가 없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율법을 잘 지키며 흠잡을 데 없이 살아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아 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 19, 20) 하고 묻습니다.

이런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 21) 하고 권고하십니다. 사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순히 영원한 생명만 바랐습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이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영원한 생명이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는데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보다 재물에 대한 애착이 커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슬픈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어려서부터 재물에 대한 집착과 애착으로 소비주의에 물들어 사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잘못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되는 줄 압니다. 아니면 옆에서 도와주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희생하고 좀 힘을 내어 하면 될 것이라고 착각하며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혼자의 힘으로 하려고 하면 하루 하루가 죽음과 같은 어둠으로 다가 옵니다.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어려움을 살펴볼 때, 때로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와 이웃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어려움이있을 때, 절망하기보다는 신중하게 하느님께 내맡겨야 하는 어려움임을 알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본능적으로 덤비고 노력하면 실망과 고통으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성덕에 도달하려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허덕이면서 가다가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용기있게 받아들이며 하느님께 의탁하여 성덕에 도달합니다. 성 마태오 사도에게 일어난 기적은 우리 모두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물질만능의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목표가 돼서는안 되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성덕에 도달하려는 목표로 살아야 재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원히 빈털터리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행위는 예수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안에서 백 배의 상을 얻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마태 19,27)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마태 19, 28-29)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청년은 지혜가 부족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고개를 떨구고 슬픔에 가득차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부름을 받지 못한 평신도이기에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못했다. 이 삶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삶이고 평신도는 소유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평신도든, 수도자든, 성직자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둔밤이나 가르멜의 산길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 하나로 채우고 예수님의 뜻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하나 되는삶을 살 수 있습니다. 평신도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나의 삶의 첫째이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사회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하는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서 가진 것을 다 판다는 것은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처럼 실제로 가진 재산을 모두 다 파는 삶도 있지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하느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느님의 뜻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사용하면서 가진 재산을 모두 다 파는 것과 같은삶도있습니다. 이기적으로 자기를 위해서만 가진 것을 사용한다면 가진 것을 팔지 않은 사람이고,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 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 것이라고 생각해서, 언제라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공동의 선을 위해서 사용할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판 사람과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은 가진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며 살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개인적인 욕구 충족을 하거나 그것을 간절히 바라며 산다면 아무리 수도자, 성직자라고 해도 가진 것을 다 판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마태오와 부자 청년을 묵상하며, 나는 가진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의 뜻만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가진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현실을 직면합니다.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 26)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을 믿고 우리는 가진 것을 다 내려 놓아야합니다.

 

인성을 신성으로 변형시키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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