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인성을 신성으로 변형시키는 불
공동체   2017-11-21 525

 

 

인성을 신성으로 변형시키는 불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49-53)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불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불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꿈꿀 수도 없고, 계획할 수도 없는 불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고양이들이 있는데 고양이 엄마가 새끼를 낳아서 기르다가 버렸습니다. 엄마 고양이가 보기에 새끼 고양이가 올 겨울을 지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서인지 몰라도, 두 마리를 낳고 두 마리를 다 버렸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새끼인데 수녀님들에게 발견이 되어서 우유를 먹이면서 키웠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고양이와 제가 아주 친해져서, “고양이야, 우리 같이 삼위일체 성당을 짓자. 네가 설계도를 한번 마련해 봐.”라고 한다고 이것이 가능할까요? , “고양이야 내 말을 잘 듣고 따르면 너도 인간처럼 될 거야. 고양이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변형되어 사는 거야. 알았지?”라고 한다면, 고양이 안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야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형될까요? 이것이 가능할까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변형되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은 어떨까요? 상상만 해보아도 너무 끔찍합니다. 인간도 유한하고, 고양이도 유한해서 아무리 변형이 된다고 해도, 이 변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불을 지르신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도록 변형시키신다는 뜻입니다. 고양이가 인간처럼 되는 것을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처럼 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불을 우리에게 지르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 나라를 함께 건설하자고 하십니다. 고양이와 성전을 짓는다면, 인간이 모두 도와 주어야 하고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것도 인간이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고 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마련하시고 다 지으셔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제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겠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닮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실 우리가 제가 성당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하느님의 일을 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돕겠습니다.”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인간의 일을 할 수 없듯이 인간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런 처지인 것을 알면 예수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하느님께서 다 하시도록 하고 나는 뒤 따라가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인간은 죄로 기울어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면 자기가 얼마나 하느님을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는지를 느끼고 보게 됩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에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나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해 주십니다. 복음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에게 어려움을 주는 이웃을 미워하는 나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살기를 싫어하고 예수님을 닮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근거도 없이 자기가 지혜롭고 의롭고 선한 사람인 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바보스럽게 행동하거나 불의한 행동, 악한 행동을 하면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이런 나의 모습이 남들 앞에서 드러나면, 거짓말을 하고 남의 탓을 하고 끊임없이 감추며 거짓이 드러날까 봐 근심 걱정을 하며, 결국에는 드러날 수 밖에 없는 현실 안에서 좌절하며 슬프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혜롭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의롭지 않은 나를 인정하며, 선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감추어야 할 것, 거짓말해야 할 것과 남의 탓으로 돌릴 것들이 줄어들어서 슬퍼할 것도 줄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하느님 밖에서 우리 자신을 찾습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나의 마음의 뿌리를 보게되면, 가끔 나는 하느님보다는 마귀를 더 좋아해서 하느님을 잘 따르려 하지 않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성인들도 이런 마음의 뿌리를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뿌리는 잘 바뀌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인들 안에는 이 불이 지펴졌습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열병을 앓고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이 불이 지펴졌습니다. 이냐시오 로욜라는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보고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더럽고 썩고,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며 성령의 불을 지폈습니다. 하느님 앞에선 인간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견디지 못해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여러분은 더럽고 추합니다.”라고 하면 화가 날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자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결국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 모습을 보아야만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인간이 정말 하느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철학 용어 중에 forma가 있습니다. Forma가 바뀐다는 것은 형상이 바뀌는 것인데, 불을 지핀다는 것은 인성을 신성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더라도 나의 모든 구조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다 바뀌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은 모든 성인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형상이 바뀌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느님으로 변형되는 것임을 직면하고, 삶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위가 달라지고, 하루하루를 대하는 각오와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하게 먹고 마시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며 하루를 보내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 안에 반드시 불이 지펴질 것입니다. 이 불이 우리 안에 지펴질 때까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과 은총을 베푸시며 돌보실 것입니다. 하느님으로 변형되어야 하는 것을 내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실에서 다가오는 많은 고통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통째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째로 바뀌는 고통은 어머니가 아이를 새로 낳는 것보다 힘이 듭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몸으로 살면 결코 만만한 고통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가능하다고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 지펴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놀라운 하느님 체험들은 아무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되니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의미를 두지 말고 쓰레기로 여기라고 합니다. 아마 그도 자기의 실체를 하느님 안에서 봤기에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책에서는 인간을 어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변형된 삶을 사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하고 너무나 어둡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오면 편하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양이는 설계도를 그릴 수 없지만 고양이 친구 인간은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께는 가능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해주시기를 청하고 내맡기면 하느님처럼 됩니다.

세상에는 악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의 공격을 받아 너무 힘들고 괴로워하며 마귀를 쫓아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나를 괴롭히면 그 사람이 그러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마귀들이 더 공격해주길 바랍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자기가 맹수에게 물려 죽어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까 봐 가는 곳마다 편지를 써서 맹수에 물려 죽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악의 공격을 간절히 바랍니다. 악이 나를 맹렬하게 공격하면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만일 본당 신부님이 잘 몰라서 나를 괴롭힌다면, ‘예수님, 신부님을 통해서 저를 더 괴롭혀 주세요. 그래서 이 고통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예수님께 내맡겨 기쁘게 살 수 있다면 예수님을 빨리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나의 고통이 마귀의 공격으로 그런 것이라면 예수님 제가 이 어려움을 잘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고통을 받아들이면 마귀는 공격하지 못하고 달아납니다. 마귀는 우리가 성덕으로 나아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기를 바라면 고통으로 짓눌려서 악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Forma, 형상이 바뀌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삶을 반복하며 예수님으로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포도주가 예수님으로 변형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계획하셨고 그것을 내 안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하느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삶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피가 끊어 오르는 신성한 삶입니다. 이렇게 계획하시고 초대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예수님으로변형되는삶을살아갑시다.

 

 

성모님은 이 세상의 선물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바져나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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