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기화 마당 - 빛
은수자 벗님들은 완덕에 도달했나요?
공동체   2018-02-25 435

은수자 벗님들은 완덕에 도달했나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1-40)

 

가평 성 마리아 은둔소에서 10여 년 은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저에게 많은 분들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옵니다. 은수자들이 완덕을 추구하고 있는데 정말 완덕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은수자들은 완덕에 도달했나요? 그리고 저희 평신도들도 완덕에 도달할 수 있나요? 성인 성녀가 될 수 있나요? 이런 직선적인 질문으로 혹시 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까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자신도 완덕에 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물어봅니다.

은둔소에서 같이 살고 있는 우리 벗님들도 이런 근원적인 의혹들로 심각하게 고민하며 지내곤 합니다.‘ 현재 나의 모습이 이렇게 형편 없는데 어떻게 언제 내가 완덕에 도달할 수 있겠어? 이런 내가 정말 성인 성녀가 될 수 있을까? 거룩한 사람이 되기에는 이런 결점, 저런 결점들이 너무 심각한데 가능해? 이런 내가 몇 년을 노력하며 은둔소에서 살았지만 조금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떡하나? 이 대로 계속 살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어쩌나! 나는 어쩌나!’ 하는 슬픈 고민을 하다가 나는 여기까지 인가 보다. 아닌가 보다.’고 잘못 생각하여 은둔소를 떠나는 벗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완덕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내가 잘 계획하여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게 살면 성인 성녀가 되는 것인가요? 우리가 노력해서 거룩하게 살면 거룩해지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만의 것으로 따로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하느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하게 된 사람입니다. 비록 심각한 결점들이 있고, 은둔소에 살면서 몇 년을 노력하여 조금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느님의 뜻을 어기며 악하게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백성들과 구별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백성들보다 특별히 우월한 다른 무엇이 있어서 선택된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백성들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리었고 구별된 것뿐입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백성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다른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다고 불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고,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우리가 거룩한 것은 본래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당신과 똑같은 우리 인간들을 거룩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하지만 아직 그 거룩함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지 않아서 거룩함이 완성될 때까지 우리와 우주 만물과 함께 신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완덕에 도달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우주 만물 안에 거룩함이 완성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선물이지 나의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졸지 않으려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기도를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고 해서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삶으로 불린 것 자체가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는 의지적인 활동을 사는 그 삶 자체가 거룩함을 완성해 가는 것이고 완성되어 가는 것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은둔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직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은수 공동체의 규칙과 회헌을 지켜 이 시대의 은수자로 살 수 있게 되고, 복음 말씀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나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내려주신 은총과 사랑의 결과라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의 피나는 노력으로 거룩함을 쟁취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내가 몇 년 동안 은둔소에 살았지만 조금도 바뀐 것이 없다고 슬퍼하며 나는 여기까지 인가 보다. 아닌가 보다.’하며 은둔소를 떠나는 벗들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은수자가 되는 것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의 결과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점, 저런 결점들이 너무 심각한 내가 완덕에 도달해야 저 저런 사람도 했는데 왜 내가 못해 하며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완덕에 도달하려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거룩한 우리가 거룩함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태오 복음에(25, 31-40) 나오듯이 아주 단순합니다. 사실 모든 심오한 신학들이 이 단순한 삶에 담깁니다. 성덕에 도달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의인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내가 죽기살기로 희생극기를 하고, 해야 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살아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마치 자신이 무엇이나 된 듯이 착각하여 오히려 악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고, 아픈 사람과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거룩함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 일은 너무 어려워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누구든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덕에 도달하려면 놀라운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깊은 체험이 많아야 하고,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덕에 도달하는 길은 아주 단순해서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도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어렵고 심오한 모든 신학을 삶에 적용하면 매우 단순해집니다. 먹고, 마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하면 우리를 거룩함을 완성해 갈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식사 당번이라면 음식을 먹을 사람들 안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예수님께서 잡수신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 때 예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청소를 한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벗들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좋은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도록 청소할 때 성덕에 도달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무엇을 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단순하게 하는 일들을 하느님을 위해 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하느님으로 생각해서 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밀가루 반죽이 부풀듯이 겨자씨가 자라듯이.

우리가 거룩한 사람, 하느님과 하나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합니다. 교만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내가 거룩하지 않은데 거룩해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한데 그것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서로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살았던 것은 우리의 거룩함이 우리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삶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실망하거나 용기를 잃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그들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사시는 은총지위의 삶을 살며 거룩함을 완성해 갔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살면 영적으로, 이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창조질서에 따라 자리가 잡혀서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거룩함을 완성해 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 세상의 선물
      
48 225816